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대한민국 양문형 냉장고 전쟁의 역사다.
1997년 삼성전자가 양문형 냉장고 브랜드 지펠®(ZIPEL®)을 출시했다. 그리고 1998년 LG전자가 디오스®(DIOS®)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하면서 수입 브랜드 월풀®(Whirlpool®)과 고급 냉장고 시장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펠®과 디오스®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월풀®의 전성시대였다.
이때 소비자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양문형 냉장고를 사는 이유가 냉장고의 기능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사치품으로 고급 냉장고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필요의 탄생”은 런던과학박물관의 최고 인기 도서다. “한 시대의 소망과 욕망, 사회문화적 맥락이 얽힌 냉장고의 역사”를 통해 한때 사치품이었던 냉장고가 어떻게 필요를 넘어 필수품이 되었는지 역사적 과정과 기술적 진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마케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필요”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생하게 알고 싶다면 꼭 한 번 일독하기를 추천한다.
“나름대로 유용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던 냉장고는 어떻게 현대식 주방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 되었을까?
2012년 영국 왕립학회에 따르면 “식품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은 냉장 기술”이라고 한다. 이유는 냉장 기술이 현대 사회의 식량 공급, 식량 안보, 식품 안전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냉장고의 역사는 여러 가지 과학적 발견과 응용 기술, 증기 기관을 비롯한 각종 동력 공급 장치, 얼음 수확, 산업 디자인과 대량 생산, 대중문화, 공중보건과 위생, 기술 혐오, 성 역할,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현대인의 식습관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 얼음 장수의 왕림, 제2장. 냉각 기술의 발명, 제3장. 집으로 들어온 냉장고, 제4장. 꿈의 주방, 제5장. 냉장고의 구조, 제6장. 음식 혁명, 제7장. 당신의 냉장고는 건강을 가져다 줍니까?, 제8장. 냉장고가 꿈꾸는 쿨한 세상이다.
지난 100년간 냉장 기술 발달과 콜드체인(저온 유통 체계)은 인류의 유구한 음식 저장법과 1년에 걸친 수확 과정을 매일, 매주 음식을 사고 저장하는 방식으로 대체했다. 이제는 공기처럼 우리 삶의 필수 요소가 된 가정용 냉장고는 이 100년의 역사와 콜드체인의 최종기점이다. 누구도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가전이며, 음식을 신선하게 보존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생필품이 되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 가전 회사들이 일부 계층의 사치품이었던 냉장고를 대중의 필수품으로 만든 것은 “회사들이 펼친 집념어린 홍보 전략의 결과”라는 것이다.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등에 이어 오늘날 가전 회사들이 전방위로 ‘필요’를 홍보하고 있는 스타일러는 또 다른 ‘필요의 탄생’이 반복 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글쓴이 헬렌 피빗(Helen Peavitt)은 런던과학박물관 큐레이터다. 이 책은 런던과학박물관의 소비자 가전 부문을 맡고 있는 저자가 냉장고가 인류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까지 과정을 정리한 기술적·문화적·산업적 연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일상을 바꿔버린 ‘냉장고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는지 탐구하고 있다. 현대식 냉장고의 개발이 이루어진 시점부터 스마트 가전이 나온 지금까지 냉장고에 얽혀 있는 다양한 지식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또한 런던과학박물관과 제휴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총 100여 장의 진귀한 사진과 삽화를 수록해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옮긴이 서종기는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남자의 구두》, 《광물, 역사를 바꾸다》, 《훼손된 세상》, 《마이클 조던》 등이 있다.